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늘 새로운 일상/작은 일상 담기

굴곡이 심한 아홉고개


삶의 굴곡이 심한 고양이가 있었다.

고양이는 매일 저녁, 내일 아침 숨을 쉬기 위해 밤마다 아홉 고개를 넘었다.

아홉 고개는 굴곡이 상당히 심했다.

그래서 나는 너무나 섣불리 그 고양이가 "삶의 굴곡이 심한" 고양이라고 믿었다.

고양이는 내가 아주 심한 잠무덤에 빠졌을 때만 나를 찾아왔다.

그리고 그 때마다 고양이는 항상 고개를 넘는 중이었다.

언제나 일곱 고개쯤이었다고 생각된다.


하루는 고양이가 너무 힘겨워 보여 "너를 안고서 아홉 고개를 넘겨줄게" 라고 말했다.

그러자 고양이는 두 눈을 감고 말했다.

"인간이 될 수 있다면 이쯤, 아무렇지도 않아. 그리고 나는 니가 생각하는 만큼 힘겹지 않아"

그렇게 말하는 고양이의 태도가 순간 자신있어 보여 나는 왜냐고 물었다.

고양이는 말했다.

"저녁부터 밤까지 하루종일 고개를 넘는 건 아니니까, 내게도 휴식시간이 있다구.

새벽 달이 밤의 정원을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그 순간이 나만의 휴식 시간인데...

난 그 시간에 커피를 마시며 TV 시청을 해... 요즘 케이블에서 인기리에 방영중인 "위기의 고양이들"을 보면서

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나면 그 날의 피로쯤은 그냥 사라져 버린다구... 앗! 이런... 벌써 휴식시간이네?


고양이의 달콤한 휴식을 차마 방해할 수가 없어 그냥 나는 눈을 떠버렸다.


오늘 저녁.

나는 그 누구에게도 편안히 잠들라는 인사를 받지 못했다.

쓸쓸하게 잠들려는 찰나, 고양이가 나타났다.


"오늘로 끝이야. 나는 이제 삶을 가진 인간이 될 수 있어.

지금부터는 나를 "굴곡이 심한 사람" 이라고 불러도 돼. 그건 더 이상 건방진 말이 아니니까.

이제 난 결혼이란 걸 해 볼 생각이야... 베라박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말야...

그 동안 나를 안아주지 않고 내 검은 눈에 입맞추지 않아줘서 너무 고마워."



나는 눈을 감았다.

힘이 든다.

내 앞에는 아직도 여덟 고개가 남아있다.

편안히 잠든 고양이는 분명 삶 속에 잠들어 있을 것이다.

나는 검은 네 개의 다리로 굴곡 심한 아홉 고개를 넘는다.

나는 아직 "삶"이란 단어를 쓸 자격이 없는 것일까...?